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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 인구와 영양 === 청평의 인구는 1949년 약 1억 3천만 명에서 1958년 약 1억 5,800만 명으로 늘었다가, 대기근을 거치며 1961년 약 1억 5,300만 명으로 줄었다. 1957년 약 620만 명이던 출생아 수는 1960년 약 370만 명까지 떨어졌다. 혁명 직후 제정된 피임·낙태 금지법과 "인구는 곧 국력"이라는 려우의 방침 아래 출산율이 높았는데도 인구가 줄었다는 것은, 수치 이상의 초과 사망이 있었음을 뜻한다. 기근이 끝난 1962년부터는 보상 출산으로 해마다 700만 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나는 출산 붐이 일었다. 이 세대가 노동 시장에 나온 1970년대 후반 일자리와 식량 부족이 문제가 되자, 1978년 정돈 회의 이후 정부는 두 자녀 정책을 도입했다. 청평의 인구는 1975년 약 2억 1천만 명, 2020년대 약 3억 명으로 늘었으나, 1990년대부터 저출산 국가가 되어 오늘날 합계출산율은 1.6명 안팎이다. 국제 기구의 추정에 따르면 청평의 1인당 하루 열량 섭취량은 1957년 약 2,050kcal에서 1960년 약 1,480kcal로 떨어졌다. 대다수 농민이 사실상 하루 한 끼로 버틴 셈이다. 열량 섭취는 1965년 약 1,850kcal로 회복되었고, 1978년 개혁 이후에야 2,000kcal를 넘었다. 청평 노인들 사이에서는 "차라리 황조 시절이 더 먹고살 만했다"는 말이 오갔는데, 이는 대약진 이후 20년 가까이 식량 사정이 식민지 이전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통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. 농촌의 중년층 이상은 이 참상을 비교적 담담하게 견뎠다고 한다. 식민 지배와 대기근, 독립 전쟁을 모두 겪은 이들에게 기근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. 그러나 그들을 가장 크게 무너뜨린 것은 굶주림 자체보다, 굶주림을 준 것이 이번에는 외세가 아니라 자신들이 세운 혁명 정부였다는 사실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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